창조하지 말아! 그럼 너와 가족이 죽는다! (부친의 간곡한 조언)
작성자 : 이 * * 작성일 :2022-01-19 조회수 :67
1978년 밭작물연구소 사로청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사로청은 <사회주의 로동청년동맹>을 줄인 말이다. 전 위원장이 김일성 접견자였는데 그를 제치고 되었기에 모두 놀랐다. 전 위원장 문선희는 초등학교시절 학급반원들과 평양 룡성구역 청계동 대도로를 청소하다가 마침 지나던 김일성이 눈에 띄여 사진을 찍는 통해 접견자가 된 것이다. 접견자이상 출세의 토대는 없다. 그래서 사로청위원장을 시켰던 것이다. 문제는 여성으로서 통솔력이 부족해 난장판이 된 것이다. 연구소 사로청원들은 모두 인테리 출신 청년들이기에 이들을 통솔하기는 고졸 출신 처녀 위원장으로서 역부족이었다. 보다 못해 그 대타로 나를 임명하였다. 사로청원들을 휘여잡을 자는 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워낙 몸사리는 것 없이 앞장서 나가니 사로청원들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당간부의 최우선 후비인 사로청위원장이 될 토대는 아니었다. 훗날 나를 임명한 당비서가 반대파의 비판을 받을 만큼 나는 토대가 나빴다. 부친이 남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로청위원장이 되었다고 하니 부친이 제일 놀라며 또 기뻐하셨다. 하지만 첫 마디 조언이 <창조하지 말아! 그럼 너와 우리 가족이 죽는다!. 너 성격은 꼭 정치범이 될 소지가 크다 (이 예언은 맞았다. 훗날 가장 정치범인 탈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산대학 수석 졸업하시고 정치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의 첫 조언이다. 주체사상에서 인간본성을 세가지로 말한다. 자주성, 의식성, 창조성. 그런데 창조하지 말라니 심히 모순이다. 왜 창조하지 말라고 하셨는지는 사로청위원장 사업 2년만에 완벽히 깨달았다. 수령 유일사상, 유일지도체제에서 창조란 없는 것이다. 창조는 곧 정치범이라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그 자리가 싫어졌다. 남들은 꿈엔들 하고 싶은 자리였지만 로버트같은 정치사업은 재미가 없었다. 또 사로청위원장 권한으로 당 내부규정을 볼 수있는데 이 규정대로 나의 앞길을 진단해보니 기껏해야 시 당 지도원밖에는 해당이 안됨을 알게되었다. 평등사상, 평등사회라고 하지만 실제는 철저히 불평등했던 것이다. 전 위원장 문선희처럼 김부자 접견자가 되지 않은 한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접견자가 된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인데 바랄게 못되었다. 내가 창조의 삶을 살 수있는 것은 과학이었다. 그래서 연구원이 되었고 결국 과학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다보니 그 제도가 바뀌기 전에는 그 마저 안됨을 체험하고 탈북하게 되었다. 내 후임으로 사로청위원장은 송결주란 친구가 되었는데 몇년 전 북한 중앙TV기자가 과학원 취재때 인터뷰 대상으로 나온 것을 보고 반가웠었다. 송결주는 평남도 평원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