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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의 <위대한수령님 아들>을 처음 본 1974년 3월

작성자 : 이 * * | 작성일 :2021-11-22 | 조회수 :88

197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김일성의 아들을 본 다는 것은 어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김책공대 입학시험을 치러갔을 때 보았다(1974년3월).

온통 시험에만 집중하였지만 그래도 선배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수험생들은 선배들 기숙사 방마다 배치하여 숙식시켰기 때문이다. 

놀란 것은 선배대학생 70%가 아바이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17살인데 이들은 30대 후반이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정책상 제대군인을  주로 받게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같은 직발생은 더 더욱 하늘에 별따기로 
대학 가기 힘들었다.

장기 군 복무로 인해 아바이대학생들은 기초실력마저 부족하였다.
어떤 특수부대출신 제대군인은 시험지에 
자동보총(인민군주력총 AK 47)을 그려냈는데도 합격되었다고 한다. 
이런 아바이 대학생들마다 직발생들이 담당교사로 배치되어 학습지도하는 실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바이대학생들은 우리를 존대하였다.
공부하다 자기도 모르게 책상에서 자다 깨어나 보면 침대에 눕혀져 있다. 
아바이대학생들이 친히 눕혀 재운 것이다.

이 아바이대학생들은 학업실력은 낮았지만 사회실력은 높았다.
정치에 관심도가 굉장히 높았던 것이다. 
그 통에 상상도 할 수없었던
<위대한 수령님 아들>을 보게 되었다. 

북한대학에 유일하게 배포되는 잡지가 <대학생>이다.
그 뒤 표지에는 반드시 전국 최우등생들을 소개한다.
이것을 알고 훗날 뒤 표지에 난 여대생에게 편지를 보내 
아내를 선택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아바이 대학생들이 수군거리며 한 사진을 가르킨다.
이것이 수령님 아들이라는 것이다.
수령님 아들이라고 써있지 않은데도 그들은 확신있게 이야기 한다.

그때가 1974년3월이었으니 그전에 출판된 대학생 잡지였다.
소개된 사진은 김일성종합대학의 김평일이었다.
놀랍게도 김일성을 빼닮은 것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아바이 대학생들은 또 수군거린다.
수령님 아들이니 공부 잘 한다 소개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실력이 낮다는 것이다. 

수령님 아들 뿐아니라 전반 김일성 대생들이 
김책공대생보다 실력이 낮다고 한다.
왜냐면 간부들 빽으로 실력미달생들이 입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나도 대학뽄트 받는 시험에서 압도적 점수임에도 배제되고 
대신 비교도 안되는 점수의 간부자녀들이 선정된 것을 
학교선생님들과 부친이 난리를 일으켜서야 겨우 받아왔기 때문이다.

김책공대생들은 김일성대생과 굉장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도 김대생보다 앞서지만 대학별 체육경기때도 항상 이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대에서 물밑교섭까지 해 온다는 것이다.
수령님 명함 딴 대학을 의식해서 좀 져달라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정확한지는 그 후 경험한 것이 없지만
당시 대학선배들이 하는 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