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본능과 싸워온 내가 체험한 공산주의
작성자 : 이 * * 작성일 :2021-10-05 조회수 :83
1945년 생을 해방동이라고 하듯이 나는 공산동이다. 북한공민증(신분증)에 1958년1월1일 생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1958년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시스템)완성을 선포한 해이다. 여기 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민영의 반대인 국영화가 완성된 것이다. 공산주의 첫 단계인 사회주의제도라고도 하지만 개념정리를 위해 통틀어 공산주의라 하겠다. 부모도 공산당원이니 가정교육도 공산주의이다. 물론 사회교육도 공산주의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공산당 간부 제일 후비 인 사로청위원장(청년비서)까지 하였다. (*과학원 밭작물연구소 사회주의 로동청년동맹 위원장) 이런 완벽한 공산 동으로서 체험한 공산주의는 무얼 가. <공산주의는 인간 본성을 무시한 사상(이념)이다.> 공산주의에 대해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말이라고 본다. (인간 본성을 무시했다는 말은 익히 좋은 말이고 사실 싸워왔다.) 이는 탈북하여 중국 체류시(1992년) 찾아뵈웠던 연변대학 정판룡 총장의 말이다. 정말 생각해보면 공산주의는 인간 본능과 싸워왔다. 인간 본능인 이기심, 성 본능, 종교본능과 싸워온 것이다. 1. 공산주의는 이기심과 싸워왔다. 사람들을 유산과 무산으로 나누고(계급) 전 세계 무산자는 단결! 유산자 타도가 공산당 선언이다. 개인소유 관계(보이지 않는 손)를 없애고 국영화하면 평등 부유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꼭 반대로 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유일 수령 화한 북한은 유일 주인이 수령이고 나머지는 모두 노예화되었다. 그 결과 평화 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지상최대의 참상이 일어났다. 2. 성 본능과 싸워온 내가 체험한 공산주의 3대 혁명이 발족, 진행되던 시(1970년대) 청년기를 보냈다. 연애를 간첩 잡 듯하던 시절이다. 대학 때 연애는 퇴학, 중 고등학교 때 연애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전문대 3년간 여학생과 다정히 이야기 한 적었다. 마치 성적인 것은 타도해야 할 부르죠아였다. 오직 있다면 혁명적 연애 즉 혁명을 위해서만 있어야 했다. 그러니 성교육이란 있을 수 없다. 제대군인 출신 탈북동료의 증언이다. 13년간 군복무기간 휴가 한번 없었다. 사회와 여자도 단절되었다. 제대 직후 중매로 결혼식 첫날 밤, 긴긴 복무기간 여성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곱고 밉고 간에 여성 자체면 만족했고 그 첫날밤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황홀함은 잠시 여자가 뿌리치며 벌떡 일어나 <동무! 이러자고 결혼했습니까?!> 너무나 당혹하여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정신 차리고 되물었다. <아니! 결혼은 같이 자라고 당에서 승인한 것 아니오?!> 아마도 그 여자는 수령님 초상화나 동상 앞에서 우리의 결혼이 혁명적 사랑임을 고백 식하기 전에 동침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 것이다. 사리원사범대학 학장 딸이 시집갔다 다음날로 쫏겨 왔다. 그것도 <화냥년>이란 끔찍한 딱지까지 부쳐 가지고 말이다. 아니 사법 대 학장으로서 딸 교육을 누구보다 잘해 키워 시집보냈는데 이게 무슨 날 벼락같은 소리야?! 순수한 내 딸을 범하고 차버린 것 아니야? 하고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자 남자 쪽에서는 차마 그 이유가 비속하여 엄마끼리만 만나 이야기하기로 하였다. 험상 굳게 만난 학장 딸 엄마. 하지만 점차 남자 측 엄마가 얘기하면 할수록 배를 그러안고 웃으며 <그래서 우리 딸은 정말 처녀예요> 사연을 그랬다. 꿈 같은 첫날 밤 동침 무드 인데 그 만 남자가 기겁을 한 것이다. 이유는 여자가 남자 위에 기어오르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있을 수 없고 틀림없이 화냥년들이나 하는 짓인 것이다. 그런데 학장 딸 엄마는 오히려 그래서 처녀라고 강변할 가. 그 사연은 이랬다. 학장은 대학에서 인품 있기 소문 나 있다. 학장이라고 큰 주택이 차례지건만 그때마다 부하들에게 양보하고 단칸방 집에서 장장 살았다고 한다. 이런 인품에 평안해서인지 먹으면 먹는 대로 살이 쪄 성관계하기 불편할 만큼 배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날씬한 사모가 꼭대기로 올라가군 하였는데 이 모습을 단칸방에서 함께 자는 딸이 잠결에 본 것이다. 아마도 이 세상 남녀 성관계는 저렇게 하는 가로만 배운 딸이 된 것이다. 이젠 남 얘기할 것 없이 제 얘기를 하여야겠다. 상대를 6년 기다려한 결혼 첫날 밤이다. 황홀하다 못해 신비하였다. 그 속에서 놀란 것은 처녀 젖가슴이 생각보다 훨씬 큰 것이다. 동생들 젖먹이는 어머니 젖가슴을 본 후 처음인 것이다. 그래서 은근히 처녀 젖가슴을 만지며 짜보았는데 젖이 안 나온다. 그런데 왜 크지?! 애기 낳으면 멀 먹일지 걱정되어 왜 젖이 안 나오냐고 하니 웃어 죽겠단다. 생각해보니 기우였음을 깨달았지만 순간적으로 그런 착각을 불러올 만큼 사회나 가정환경이 그랬다. 내 아래 여동생만 셋이다. 누구나 비슷한 어려운 북한 집 조건에서 한방에서 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동생들이 성인이 되도록 젖가슴을 본 적이 없다. 여동생을 비롯해서 어찌나 꽁꽁 싸매고 사는지 겉보기에는 남자 가슴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비화들은 얼마든지 실례를 들어 증언할 수 있다. 이런 비화들은 공산주의가 화창한 1970년대 북한판 문화대혁명인 3대혁명기간의 얘기들이다. 공산주의 완성될 때까지 해야 한다는 3대 혁명운동은 아직도 북한에서 철회한 적 없다. 3대 혁명 시작부터 김정일은 연예인들의 성적 문란을 바로잡는다며 7일 생활총화를 2일 생활총화로 조였으며 이를 전 국민에게까지 적용하였다. 심지어 여기의 최진실 같은 최고 배우인 우인희 배우의 불륜 건으로 전 연예인들 앞에서 총살까지 할 정도였다. 이렇게 인민에게는 연애도 못 하게 하면서 수령 자신들은 어떤가. 그가 유부녀 배우인 성혜림을 범하고 아들(김정남)까지 낳은 것이 바로 그때이다. 그 아버지 김일성도 자기 딸 정도가 아니라 손녀 벌 주치 간호사와 연애하여 자식까지 낳은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 김 부자야 내 청춘 돌려다오! 3. 종교본능을 말살한 공산주의 인간과 짐승이 근본적으로 다른 본능이 종교성이다. 아무리 똑똑한 짐승이지만 종교는 없다. 식인할 정도로 미개한 인간이지만 어김없이 종교가 있다. 공산주의는 종교는 아편, 철저히 탄압하였다. 특히 북한은 종교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말살하였다. 1971년 제작 <성황당>이란 혁명연극에서 공언한 것처럼 종교가 없는 유일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