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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봉변(북한판 문화대혁명 시)

작성자 : 이 * * | 작성일 :2021-09-21 | 조회수 :26

북한판 문화대혁명은 3대혁명이다. 
3대혁명은 사상, 기술, 문화 혁명이 내용이다. 
1970년 당 제5차 대회에서 처음 발표하였다. 
3대혁명은 곧 유일수령화가 목적이다.
유일수령화는 곧 신격화로 1972년 당 10대원칙으로 못 밖아놓았다.
당 10대원칙은 북한 헌법 위에 진짜 헌법이다.
중국 문화대혁명의 첨병인 홍위병은 소녀소년이었다면 
북한판 문화대혁명의 홍위병은 대졸과 간부로 구성된 <3대혁명소조>였다. 
1972년 발족 당시는 옛날 암행어사같이 권한이 있어 현지 당 간부도 두려워하였다. 
당권이 무시된다는 비발치는 신소로  10년 후 격하되었지만 
초시기는 김부자 파견장 소지자로 무소불위였을 정도였다. 
유일수령화의 3대혁명은 정치범수용소를 곳곳에 세워야 할 만큼 많은이들이 숙청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속에는 부주석인 김동규, 중앙당 대남사업 비서 류장식 등도 포함될 정도였다.
조직생활총화는 한달에 한번에서 일주일로, 심지어 2일에 한번씩으로 까지 심화되었다.
추석도 봉건유교의 잔재로 격하시켜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10년 후 지나치다는 것을 통치자도 느껴 전통명절로 다시 인정할 정도로 초시기는 그랬다. 
관혼상제에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낭비를 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아버지가 걸려들었다.
고향이 남쪽인 아버지로서 625전쟁때 헤어진 후 다시 못 봐 
누구보다 조상생각이 나 제사를 지닌 것이다. 

이것이 들켜 당 생활총화에서 몇 달을 두고 두고 비판을 받으셨다.
죄목은 우선 3대혁명을 어긴 것이며 다음은 허례허식으로 귀한 식량을 낭비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상기된 아버지의 모습에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혹시 정치범수용소에 여기저기서 끌려가는 대열에 우리도 속하지 않을 가 두려움도 엄습하였다.  
그 해가 1975년이다. 
이러한 엄숙함은 10년간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