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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밤나무 망사

작성자 : 이 * * | 작성일 :2021-09-19 | 조회수 :30

아래 사진은 주변 길가에서 10분 정도 주은 밤알들이다.
차가 밟고 지나간 밤알들이 더 많았다.
북한같으면 떨어지기 전에 벌써 다 없어졌을 것이다.
북한도 유명한 밤나무 고장들이 많다. 정주밤은 매우 유명하다. 
여동생이 정주로 시집가서 가보았는데(1986년) 
정주밤의 유명세는 옛말이었다. 
우선 밤나무 자체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고향 황해도 서흥도 마찬가지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도 같은 고향, 이승만 대통령은 바로 엽 평산) 
1970년까지 외가인 서흥군 고성리 5반에 매해 놀러갔었다.
뒤렁골이라는 동네 엽산골짜기로 밤 따러 외삼촌들과 자주 갔다.
오솔길의 특이한 들 박하냄새가 가을풍기를 돋군다.
내천에는 뚝지, 꺽지, 가재가 상당했다.
조카에게 강냉이 밥만이 안 쓰러워 반찬(물고기)을 먹인다고 내 천에 나가신다. 
무거운 메로 돌을 내리치면 어리쳐 나온 물고기를 잡던 재미가 먹는 것보다 즐거웠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10년 새에 급격히 사라져버렸다. 
1983년에 가보니 내 촌은 흐르지 않았다.
마을 주변 산들은 흰살을 드러내듯 벌거 벗었다.
뒤렁골의 밤나무도 사라져 버렸다.
평생 이 산골에서 사신 외 조부가 역사를 대변하신다.
일제 때와 협동화 전까지는 산천 것만 뜯어먹어도 살 생태였다고 한다. 
읍(신막)으로 가는 야산 길은 너무 우거져 범이 나온 다고 무서워 할 정도였다.
이러한 생태가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사회주의 협동화라한다.
협동화되니 자기 밭머리 대추나무부터 찍어 불 때더라고 한다.
길가에 주렁진 대추 농촌풍경이 한 순간 사라진 것이다.
그런대로 버티던 뒤렁골의 우거진 밤 숲이 왜  사라졌을 가.  
협동화이전에는 저절로 떨어진 밤을 주었다고 한다.
협동화 이후에는 장대기로 밤송이를 떨어뜨려 수확하였다.
이것도 양반이다. 
점차 손도끼로 밤나무 가지를 찍어 수확한다.
손 도끼도 양반이다. 
뛰는 놈위에 난다고 밤나무 밑둥 채로 베어 가져간다. 
밤과 나무는 그래서 사라졌다고 하신다.
나무가 사라지니 내 촌의 물도 물고기도 사라졌다고 하신다. 
난 다 살아 그만이지만 너희들은 어떻게 살아 가겠는지?
깊은 주름살과 같이 풀수없는 걱정을 하시던 얼굴.
외조부님의 걱정대로 산천 망사는 대량아사로 이어져 온 
북한의 망사이다.